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 (문단 편집) == 기타 == [[윈스턴 처칠]]의 경우 [[1945년]]까지 재판은 있을 수 없고 악질범은 과거의 처리 방식대로 군대에서 총살하자고 의견을 제시했으며 소련 측의 한 인사는 고위직 정치인과 범죄 행위가 확실한 자들만을 추려 약 5만명 정도 주요 범죄자들을 아무도 모르게 새벽에 총살하자고 의견을 개진했다. 그러나 미국은 뉘른베르크 재판을 끝까지 관철하였다.[* 에른스트 벤다가 저술한 '새로운 국제법의 기초를 세운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이 원 출처, 김명섭 [[연세대]] 정외과 교수가 저술한 '대서양 문명사'가 674p에서 재인용.] 이후 국제법을 공부한다면 한번쯤은 볼 만한 판례. 이와 같은 기본적인 입장은 도쿄 재판에서도 관철되었다. 단, 일본군 포로 수용소에서 통역으로 일했던 조선인들이 독일의 부총통 헤스에게 내려진 것과 같은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김명섭 연세대 정외과 교수 저, '대서양 문명사', 675p] [[프리드리히 파울루스]] 육군 원수는 소련군에 투항했고 전범 혐의를 받을 일을 하지 않은 덕에 이 재판에서 '''전범이 아니라 증인'''의 자격으로 증언했다. 소련에 포로로 잡힌 독일군 중에서 전범 혐의자는 뉘른베르크 재판과는 별도로 소련에서 전범 재판을 받았으나, 파울루스는 전범 혐의로 볼만한 행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여기에 기소되지 않았다. 일단 파울루스는 1942년 봄에 6군 사령관을 맡기 전까지는 지휘계통과는 거리가 먼 참모장교로만 일했기 때문에 휘하부대의 학살혐의에 대한 감독 책임은 없었고, 그가 비로소 야전직을 맡은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민간인이 거의 빠져나간 도시에서 격전을 치뤘기 때문에 학살 같은 일을 벌일 여지도 없었다. 오히려 파울루스는 학살 등의 전쟁범죄를 지시하는 [[라이헤나우 강조 명령]]을 폐기하고 전쟁범죄를 금지시키는 등 '''국방군에서 보기 드문 올바른 자세'''를 보여주었다. 물론 [[무장친위대]]가 이런 명령을 무시하고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사례가 있기는 했지만 부하의 [[명령불복종]]까지 파울루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전범 혐의는 받지 않았다. 파울루스는 뉘른베르크 재판에서 옛 동료였던 요들이나 카이텔 등에 대한 불리한 증언을 거부하여 바로 석방되지 못하고 몇년간 더 억류생활을 했다. [[아돌프 히틀러]]의 경우 본래 생존 가능성을 근거로 기소 대상자 명단에 있었으나 얼마 후 소련 측에서 사망을 공식 발표하면서 제외되었다.[* 사망했기 때문에 기소되지는 않았으나 생존하여 기소됐다면 재판에서 4가지 기소 내용으로 재판을 받고 유죄 판결후 부하들과 같은날 [[교수형]]에 처해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혹시나 해서 [[이오시프 스탈린]]이 [[KGB]]를 [[아르헨티나]]에 파견하기도 했다. 지금도 뉘른베르크 재판에 대해 말이 많아서 1949년 감옥에 수감된 나치는 300여 명에 불과했다.[* 이것은 [[냉전]]의 개막과 관련이 있다.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도 마찬가지지만 날로 강해지는 [[소련]]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은 자기들의 입장에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전범들은 최대한 선처하자는 분위기에 휩싸이고 있었다. 이 때문에 뉘른베르크 재판과 도쿄 재판 모두 고위층 위주로 처벌이 이루어졌으며 이는 [[나치의 남미 도주]]와 [[일본의 우경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일부 유대인들은 복수를 위해 비밀결사대 '''나캄'''[* 담 예후디 나캄(Dam Yehudi Nakam): 유대인의 피에 대한 복수라는 뜻이다.]을 만들기도 했다.[[http://m.news.naver.com/hotissue/read.nhn?sid1=110&cid=1051460&iid=1829294&oid=469&aid=0000168923|#]] 나치가 행한 인체실험에 대한 충격적 진실이 밝혀지고 과학과 의학의 이름을 참칭해 벌어진 참혹한 학살에 대한 과학계 전반의 반성으로 의료실험 [[연구윤리]]에 대해 규정한 [[뉘른베르크 강령]]이 발표되었으며 국제적으로 과학자 연구윤리의 대한 스탠다드가 되었다. 또 자국민에게 저지른 범죄도 그것이 반인륜 범죄에 해당한다면 국제 사회에서 그 죄를 벌할 수 있다는 판례가 만들어진 것도 이 때의 일이다. [[T-4 프로그램]]에 가담한 전쟁 범죄자들이 살해한 자들의 대다수는 독일 자국민이었지만 연합국은 그 역시 전쟁범죄의 일환이라고 판단하여 똑같이 죄를 물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